실손의료보험 개혁을 두고 논의가 뜨겁다. 정부는 5세대 실손보험 출시를 앞두고 실손보험을 전체적으로 개혁하려는 뜻을 비치고 있다.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부분은 기존 1세대,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실손보험 재매입 부분이다. 기존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이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실손보험 1세대와 2세대 가입자들의 실손보험이 재입될 경우, 얼마 정도의 실손보험 재매입 보상을 받아야 합리적일지 고민해본다.
실손보험 세대별 특징 비교
실손보험은 의료비에서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않는 급여본인부담금과 비급여의료비를 보장하는 보험이다. 1999년 최초 판매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된 것은 2000년대 후반부터이다. 판매된 시기에 따라 1세대, 2세대, 3세대, 4세대로 나뉜다.
각 세대별로 보장 범위, 자기부담금 금액이나 비율 등이 다르게 적용된다. 종합적으로 보면 가입 시기가 이른 1세대 쪽에 가까울 수록 보험금이 비싸지만 보장 범위가 넓고 자기부담금 비율이 낮으며, 가입 시기가 늦은 4세대 쪽에 가까울수록 보험금이 싸지만 보장 범위가 좁고 자기부담금 비율이 높은 특징을 보인다.
실손보험 재매입 보상 – 얼마를 받아야 하나?
그렇다면 만약 정부가 실손보험 재매입을 강행할 경우, 기존 1세대나 2세대 가입자는 얼마를 돌려받아야 할까? 이는 개인이 가입한 보험의 종류와 시기에 따라 천차만별이겠지만, 2007년에 가입한 한 1세대 실손보험을 예시로 설명해본다.
이 보험의 한 달 보험료는 가입 당시 월 49,700원이었다. 가입 대상이 20대 남자여서 1세대 실손보험료 치고는 높은 편은 아니었다. 20년 납 80세 보장 상품이었다. 물론 80세 보장은 비갱신 특약에 대한 이야기고, 실손 부분은 만기인 80세까지 5년마다 갱신된 보험료를 매달 내야 한다. 아직 20년 완납이 되지 않아서 20년 이후에는 보험료를 얼마나 내야 할 지 모르는 상황이다.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 제외하고, 지금까지 이 사람이 낸 보험금의 합계를 구해본다.
- 49,700원 * 60개월 = 298만 2,000원
- 49,096원 * 60개월 = 294만 5,760원
- 47,959원 * 60개월 = 287만 7,540원
- 48,188원 * 26개월 = 125만 2,888원
- 합계 = 1,005만 8,188원
17년 간 낸 실손보험료가 1,000만 원이 넘는다. 만약 보험료가 비싸서 매월 10만 원이 넘는 보험료를 내야했다면 벌써 2,000만 원이나 되는 보험료를 납입했을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이 사람이 받은 실손보험금은? 도수치료 한 번, 10만 원이 전부다. 그렇다고 이미 낸 995만원 전부를 돌려달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립형도 아니고 보장형 보험인데다 운이 좋아 지난 17년 간 크게 아프지 않았기 때문에 보험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지 선의로 보험금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7년을 보장해준 보험금은 일정 부분 어느 정도 제외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얼마만큼 제외하는게 맞을까? 얼마만큼 제외를 해줘야 사람들이 비교적 수긍하면서 실손보험 재매입에 동의할까?
실손보험 재매입 보상 – 동의할까?
사실 많은 사람들은 지난 기간 동안 낸 보험료 전액을 재매입 비용으로 지급한다고 하더라도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은 지금이 아닌 노년에 빛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에 1, 2세대 실손보험을 가입했을 나이가 30대 중반인 사람은 이제 50대 중반이 된다. 50대면 이제 본격적으로 의료비 지출이 늘어날 시기이다. 2010년 통계에 따르면 50대부터 60대, 70대를 거치면서 지출되는 의료비가 크게 늘어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굳이 통계를 보지 않더라도 당연한 이야기다.
관련 참고자료 – 요람서 무덤까지… 병원·약국 2509번 들러(조선비즈)
이 사람들은 지금까지 지난 20년간 내온 보험금으로 하나도 보장을 받지 않았어도 사실 상관없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부과될 의료비에 대해서 1세대와 2세대 실손보험이 제공하는 혜택을 적용 받기 위해 지금까지 1천 ~ 2천 만원이 넘는 보험금을 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1세대, 2세대 실손보험을 5세대로 바꾼다? 당연히 동의할 수 없다. 줄소송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실손보험 재매입 비용으로 지금까지 낸 보험료에 추가로 돈을 더 달라고 할 가능성도 있다. 미래에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실손보험금이 얼마나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의 본인 부담율은 0%이다. 한도 내라면 전액 지급한다. 횟수 제한도 없다. 이렇게 좋은 상품을 포기한다? 말도 안 된다. 재매입 될 경우 노년기 의료비에 대한 불안을 줄이기 위해 비싼 보험료를 내왔는데 돈은 돈대로 내고, 이제 다시 불안해지게 생긴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절박한 상황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노년기에 들어가는 1세대, 2세대 실손보험 가입자 약 2,600만 명을 그대로 뒀다가는 실손보험료 지출이 감당이 안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실손보험은 건강보험 재정과도 관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정부에서도 도저히 방치할 수 없는 문제다. 환자들이 실손보험을 많이 사용할수록 건강보험 지출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재정은 내년부터 적자로 돌아서게 되는데, 실손보험은 이미 적자다. 2023년에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으로만 2조 원의 적자를 봤다. 정부와 보험사가 5세대 실손보험 개혁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다.
1세대, 2세대 가입자들이 재매입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정부는 5년 갱신 시마다 보험료를 크게 올리는 방법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 보험료 인상률을 높여서 보험 유지를 어렵게 만들어 5세대 실손보험이나 그 이후 세대의 실손보험으로의 가입 전환을 강제로 유도하는 전략이다.
이러나 저러나 정부는 돈이 없고, 반대로 의료비 지출은 크게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이 갭을 누가 매우느냐가 실손보험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정리
아마 억만금을 준다고해도 실손보험 재매입을 하지 않을 사람이 많아 보인다. 재매입에 동의할 경우 실손보험은 더 이상 보험의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최소한 지금까지 낸 실손보험료에서 실손보험금을 지급받은 금액을 제외한 전액은 받아야 그나마 재매입에 대해 고민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2,600만 명에게 과연 정부나 보험사가 이 돈을 줄 수 있을까? 재매입 보상금으로 1인당 100만 원만 잡아도 26조 원이다. 1세대로만 한정해도 가입자가 800만 명이니 8조원이다. 그런데 100만 원에 재매입에 동의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불가능하다. 따라서 정부와 보험사는 돈을 주기보다는 앞으로 내야 할 실손보험료를 장기간 할인해준다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커 보인다. 얼마만큼의 할인폭을 제안할 지가 우선은 관건이 될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