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매매나 전월세 거래를 하기 전에 가장 먼저 살펴보는 서류가 등기부등본이다. 등기부등본에 부동산에 대한 정보와 소유주, 권리 관계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매수자는 토지나 아파트의 등기부등본을 보고 투자 가치를 판단하며 투자를 결정한다. 그러나 등기부등본에 숨겨진 비밀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우리나라 등기부등본 제도의 특징과 부동산 거래 시 알아두면 좋은 물권과 채권의 관계, 이와 관련된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정리해본다.
등기부등본의 공신력
우리나라 등기부등본에는 공신력이 없다. 우리나라 민법에서는 등기의 공신력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원 등기소에서는 등기 내용의 진위는 확인하지 않고 형식만 심사하기 때문에 등기부등본의 내용이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조작된 등기부등본을 보고 계약을 해서 피해자가 됐을 때, 누구에게도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의미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지만 만약 피해자를 구제해준다면 위조된 등기부등본의 건물을 가진 원소유자는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재산을 강탈 당하게 되는 꼴이 된다. 결국 누구의 권리를 우선할 지에 대한 선택 문제인데 우리나라 법은 과거 6.25 전쟁 이후 혼란스러운 사회상 속에서 만연했던 토지 사기를 예방하고 피해를 줄이는 차원에서 원소유자의 권리를 우선 시 하기 위해 등기부등본에 공신력을 인정하지 않는 쪽으로 결정되었다.
참고로 미국에는 아예 등기라는 제도가 없다. 미국은 부동산 소유권 이전 시 변호사와 함께 작업을 진행한다. 주 정부에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주 정부 공무원들이 해당 소유권을 확인하기 위해 직접 현장 방문을 하고 조사를 진행한다. 이 방법은 철저하긴 하지만 속도가 느리다는 단점이 있다. 최소 6개월이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빨리빨리 문화에는 적합하지 않다.
물권과 채권
우리나라 등기 제도는 물권이 채권보다 우선한다고 본다(유치권, 법정담보물권 등 채권이 물권에 우선하는 예외도 있긴 있다). 물권은 근저당권, 전세권 같은 물건을 직접적으로 지배해서 얻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채권은 전월세 계약, 신용대출처럼 채무자에게 돈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시행하면서 설정하는 근저당은 물권, 신용대출을 해주면 발생하는게 채권이다.
근저당이 잡힌 아파트에 문제가 생겨 경매에 넘어갈 시 물권인 근저당이 채권인 전월세 계약보다 시기적으로 우선한다면, 주택담보대출을 시행해준 은행이 전월세 계약을 한 임차인보다 돈을 먼저 배당 받을 수 있다. 채권은 후순위이기 때문에 돈이 남아야 돈을 가져갈 수 있다.
물권과 채권의 차이는 또 있다. 물권은 권리자가 여러 명일 경우 등기 순서대로 돈을 받지만, 채권은 권리자가 여려 명이면 순서와 상관 없이 n분의 1로 나눠서 돈을 가져간다(안분 배당).
대항력과 우선변제권
개인간의 전월세 계약은 물권이 아니고 채권이다. 같은 조건일 때 채권이 물권에 뒤처지는 권리이다보니 전월세 계약 시 피해자가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피해를 다소나마 줄이기 위해 임대차보호법이라는 법을 만들었고 전입신고와 실제 거주, 확정일자 등의 조건을 만족할 경우 임차인에게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을 부여했다.
대항력
대항력은 주택 임차인이 임대인을 상대로 계약 기간 동안 집에서 나가지 않고 계속 거주할 수 있는 권리와 보증금 반환 등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이다. 대항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전입신고와 실제 거주라는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만족해야 한다.
우선변제권
우선변제권은 일정한 요건을 갖춘 임차인에게 채권의 배당 순위를 예외적으로 후순위권리자에 앞서서 우선해주는 권리이다. 일정한 요건이란 전입신고와 실제 거주, 추가로 확정일자를 받는 것이다. 이 세 가지가 모두 충족되면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있다. 우선변제권을 가지고 있는 임차인은 주택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갈 때 배당요구를 통해 자신의 보증금을 배당 받을 수 있다. 만약 배당요구를 하지 못했다면, 경매를 통해 낙찰 받은 사람에게 보증금 지급을 요구해야 한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우선변제권이란 최우선변제권과는 다른 권리이다.
전월세 세입자 경매 대처: 배당요구,명도확인서등 보증금 반환받기 | 로톡 (lawtalk.co.kr)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의 적용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은 서로 다른 권리로, 두 권리가 같은날 생기면 문제가 없지만, 각각 다른 날에 생겼다면 아래와 같이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확정일자 날짜가 근저당권 설정 날짜보다 늦으면 대항력은 인정되지만, 우선변제권은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경우 임차한 집이 경매에 넘어가더라우선변제권이 없으니 배당 요구는 할 수 없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낙찰받은 새로운 소유주에게 자신의 보증금 지급을 요구해야 한다.
문제는 같은 날 물권인 근저당과 채권인 전월세 계약(전입신고 및 확정일자)이 동시에 설정됐을 경우, 물권은 근저당 설정일부터 바로 효력이 발생하지만 채권은 신청일 다음날 자정부터 효력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이 맹점을 이용해 전세 사기를 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이러한 문제를 막기 위해 계약 익일까지 등기부등본 상태를 유지한다는 특약 등이 임대차 계약서에 거의 의무적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