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feat. 1기 신도시)

최근 1기 신도시 특별법(노후도시정비계획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1기 신도시의 재건축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각 신도시에서는 아파트별로 1번 타자인 선도지구에 선정되기 위해 동의률을 높이거나 플래카드 등으로 재건축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반면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었던 아파트 단지들은 내분을 겪고 있다. 재건축과 관련된 규제는 많이 풀리고 있는데, 리모델링과 관련된 규제는 상대적으로 풀린 게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리모델링을 추진하던 아파트에서는 리모델링이 아닌 재건축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리모델링에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1기 신도시 아파트들 중 일부는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정리해본다.


리모델링 관련 기사
리모델링 관련 기사 – 리모델링 추진 단지들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

재건축과 리모델링을 동일 선상에서 놓고 본다면 당연히 재건축이 낫다. 리모델링에는 기존 건축물의 위치와 층고, 내력벽 평면 구조를 바꿀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동일 선상에 있지 않다면, 서로 유불리를 충분히 비교할 수 있다.

리모델링 완료된 서울 아파트 목록

1. 속도

재건축이나 재개발, 리모델링과 같은 정비사업은 결국 속도 싸움이다. 속도가 곧 돈이고 빠른 사업 추진이 돈을 아끼는 가장 쉬운 길이다. 리모델링은 재건축에 비해 사업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적으로 짧은 편이다. 사실 이게 리모델링이 재건축과 비교했을 때 가질 수 있는 최고의 무기다.

1기 신도시 재건축이 특별법에 의해 빠르게 될 것 같아 보이지만, 이제 겨우 출발선을 통과한 상황이다. 조합 설립도 되기 전인 까마득한 상황이기 때문에 이미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었던 아파트라면, 이제 막 재건축을 시작하려는 아파트에 비해 시간적으로 훨씬 앞서있다고 볼 수 있다. 1기 신도시 중에서도 재건축 1번 타자인 선도 단지가 되는 건 일부에 불과하다. 순번이 밀리면 사업 완료까지의 시간은 더 길어진다. 그럴 바에야 리모델링을 빠르게 추진해서 다른 아파트들이 재건축을 기다리며 세월을 보낼 때 조금이라도 좋은 주거 환경에서 사는 게 낫다.


2. 투자 가치

1기 신도시 재건축은 번호표를 뽑아야 한다. 그러나 리모델링은 번호표를 뽑지 않고도 추진할 수 있다. 리모델링 이파트는 재건축을 기다리는 주변의 다른 아파트보다 더 빠르게 신축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리모델링 아파트 매수자는 이 점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재건축에 들어간 아파트는 공사 기간 동안 멸실된다. 기존 아파트에 거주하던 사람은 새로운 거처를 찾아야 한다. 자녀가 있을 수록, 나이가 많을 수록 기존에 생활하던 생활권을 떠나기는 쉽지 않아진다. 원래 살던 곳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 많기 마련인데 리모델링 단지는 이런 사람들에게 거주지나 투자처를 제공할 수 있다.

단, 긴 시간이 지난 후 1기 신도시 아파트의 상당수가 재건축이 완료된다면 리모델링 아파트의 가치는 다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다. 30년 뒤에는 다시 전세가 역전된다. 용적률을 다 활용하지 못한 리모델링 아파트는 역설적으로 다시 한 번 재건축의 기회가 생긴다. 반면, 이미 용적률을 소진한 재건축 된 아파트는 다시 재건축 할 수 없다. 용적률 200% 아파트 재건축도 하내 마내 하는 판국에, 용적률 400%에 가까운 아파트를 재건축 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이야기라 현실성이 떨어지기는 한다.



3. 용적률

노후도시계획 특별법에 의해 재건축 아파트가 리모델링 아파트에 비해 용적률 상향 폭이 더 넓어진 것은 맞다. 리모델링 아파트는 기존 세대수 대비 최대 21%밖에 세대수를 늘리지 못한다. 그러나 재건축 아파트는 준주거지역 상향 시 최대 750%의 용적률도 이론적으로는 받을 수 있다. 세대수를 두 배 이상 늘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말 그대로 ‘이론적’인 내용이다.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용적률 완화는 공짜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기존 용적률 이내 범위에서는 10% ~ 40%의 기부채납, 기존 용적률 이상에 해당하는 범위에서는 40%~70%를 기부채납 해야한다. 용적률이 두 배 높아진다고 해서 조합원들이 두 배 이득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높은 사업성을 위해 오히려 지나치게 높은 용적률을 채택할 경우, 과도한 기부채납 비율에 비해 사업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기존의 넓은 동간격에 살았던 때보다 더 갑갑함을 느끼며 살게 될 수도 있어 신축의 매력이 반감될 여지도 있다.

노후도시계획 특별법 용적률 상향과 기부채납 비율
노후도시계획 특별법 용적률 상향과 기부채납 비율

재건축 된 아파트 대비 낮은 용적률을 가진 리모델링 된 아파트는, 홍콩의 구룡성채와 같이 신축 될 아파트들과의 차별성을 바탕으로 의외의 수요를 끌어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리모델링 예시(개포우성9차, 개포더샵트리에)
리모델링 예시(개포우성9차, 개포더샵트리에)


재건축 대신 리모델링 – 정리

리모델링을 하는 입장에서는 불안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리모델링의 건축비는 재건축의 건축비와 비교했을 때 그리 싸지도 않다. 원재료 비용은 다소 적지만, 시공 난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주에서 착공, 입주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3~4년 정도로 재건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용은 비용대로 내고 상대적인 편익은 재건축 대비 덜 누리는 것이기 때문에 리모델링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리모델링 추진 단지(분당 느티마을)
리모델링 공사중인 단지(분당 느티마을)


그러나 리모델링 절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아파트라면, 그냥 리모델링을 빨리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재건축에 다시 10년 이상 매달릴 바에야, 빨리 사업을 추진해서 10년 안에 신축 아파트에 입주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재건축이 아닌 리모델링을 시작했다는 것 자체로 이미 그 아파트는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지는 아파트라고 판단된 아파트일 것이다. 노후도시계획 특별법으로 여러 혜택을 준다고 해도 어차피 기존에 더 사업성이 높았던 아파트들이 더 유리해질 뿐, 순위 자체가 바뀌지는 않는다. 혜택이 우리 아파트만이 아닌 다른 모든 아파트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타이밍을 놓치면 낙동강 오리알처럼 리모델링도, 재개발도 못하게 되는 어정쩡한 아파트가 될 수도 있다.


리모델링을 추진 중인 1기 신도시 아파트 주민들이 잘 생각해서 최선의 결정을 하길 바라본다. 내가 만약 리모델링 아파트 추진 조합원이고 사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상황이라면, 뒤를 돌아보지 않고 리모델링 추진에 찬성표를 던질 것이다. 만약 아무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리모델링과 재건축을 선택해야 한다면 그때는 뭐가 더 나은지 저울질을 하며 조금 더 고민해볼 것이다. 리모델링이라고 무조건 안 되고, 나쁘고 그런 건 없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정답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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