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에 트리마제라는 아파트가 있다. 한강뷰가 가능한 초고급 아파트이다. 사람들은 지금 눈에 보이는 고층의 마천루만 생각하지만 이 아파트에는 많은 사람들의 아픔이 서려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평내동에는 진주아파트라는 아파트도 있다. 부동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 쯤은 들어봤을 아파트이다. 이번 글에서는 트리마제 엔딩과 평내 진주아파트 사례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 세 가지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 해보려고 한다.
트리마제 엔딩
작년 초, 둔촌 주공 공사가 중단되고 유치권이 행사되면서 트리마제 엔딩이 나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었다. 트리마제 엔딩이란 현재 트리마제 아파트에 숨겨 있는 비하인드 스토리이다.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아래와 같다.
원래 트리마제 아파트가 있는 곳은 지역주택조합에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던 곳이었다. 지역주택조합에서 신탁방식으로 시행사를 지정했고, 시공사로는 두산건설을 선정해서 토지매입도 끝내고 사업을 잘 해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알박기 등으로 사업이 지체되는 와중에 글로벌 금융위기가 왔고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면서 사업에 어려움이 생겼다. 결국 시행사는 유동성 경색 등의 자금난으로 인해 부도가 났고, 지역주택조합은 사업을 계속 해나가기 위해 시공사인 두산건설에 자금을 요청하게 된다. 두산건설의 보증으로 PF가 체결되어 사업은 진행될 수 있었다. 그런데 공사비를 두고 지역주택조합과 두산건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두산건설은 사업이 많이 지연된만큼 금융 비용이나 기타 비용 등이 인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지역주택조합은 인상된 비용이 곧 조합원들의 추가 분담금이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칼자루는 돈 있는 사람이 쥐고 있는 법이다. 두산건설은 자체적으로 자금을 마련하여 PF 자금을 상환하면서 지역주택조합 사업을 아예 본인들의 건설 사업으로 바꿔버렸다. 결과적으로 지역주택조합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부동산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하고 잃게 되었다. 초기 시행사의 부도와 사업 기간이 지나치게 지체되면서 대출 등에 따른 이자 비용과 기타 운영 비용으로 본인들의 자산이 다 사라졌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산건설은 설계를 변경하여 자체적으로 사업을 진행했고, 기존 조합의 설계와는 전혀 다른 초고급 아파트인 지금의 트리마제가 들어서게 됐다.
트리마제 엔딩은 지역주택조합 사업이나 재건축 등의 정비사업이 잘못될 경우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최악의 사례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평내 진주아파트 재건축
평내 진주아파트는 남양주 평내호평역 남쪽 역세권에 자리한 아파트이다. 1단지 ~ 3단지 세 개의 단지로 이루어진 총 1,213세대 5층짜리 저층 아파트다. 평내호평역 출구에서 400m 떨어져 교통 환경이 우수하고, 이마트와 메가박스, 스타벅스 등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어 생활편의환경도 우수한 편이다. 같은 블록 안에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있어 교육 환경도 좋다. 용적률이 100% 초반대로 비교적 낮았고, 평내동에서 입지가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에 재건축 사업에 들어갈 수 있었다. 재건축 사업을 통해 1,231세대 구축 아파트를 1,843세대의 신축 아파트로 바꾸는 사업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한참 좋았던 2020년에는 사업 추진에 어려움이 있었어도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와 사업 추진에 대한 낙관으로 3억 5,000만원까지 가격이 올라가기도 했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이 침체에 빠지고 사업 추진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면서 가격은 하락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5년 전 가격인 1억원 언저리에서 시세가 형성되어 있다.
평내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초기에는 아래와 같이 일반 정비사업의 절차대로 원만하게 진행되었다.
- 2003년 안전진단 통과
- 2009년 조합설립 인가
- 2009년 시공사(두산건설) 선정
- 2012년 관리처분 인가
- 2012년 시공사(두산건설) 계약 해지
- 2013년 이주, 철거
2012년에 시공사를 갑자기 해지하는 일이 있긴 했지만, 이듬해인 2013년에 이주와 철거까지 마무리가 되었다. 관리처분인가에 이주와 철거까지 됐다면 정비사업의 80% 능선을 넘은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평내 진주아파트는 철거 이후 10년간 단 하나의 삽도 뜨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살펴본다. 먼저 이주, 철거 이후 평내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의 타임라인을 살펴본다.
- 2015년 시공사(서희건설) 선정
- 2019년 서희건설 공사비 증액 요구
- 2020년 시공사(서희건설) 계약 해지, 서희건설 측에서 계약 해지 무효소송 제기
- 2022년 서희건설 승소, 서희건설 시공사 지위 회복
- 2023년 서희건설 공사비 증액 요구
- 2023년 조합 총회에서 공사비 증액 요구 부결, 이후 서희건설 대주단에 이자 대납 중지
- 2024년 1월 29일까지 연체된 이자 미지급 시 납입지연으로 대주단에서 경매 실시 예정
평내 진주아파트가 10년간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조합의 내분이다. 조합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이권 문제로 계속 갈등을 겪으면서 조합장이 바뀌고, 비대위에 의해 조합장이 또 바뀌고, 조합장이 감옥에 가는 일이 생기면서 사업은 진행되지 못했다. 조합장이 계속 바뀌는 과정에서 시공사도 교체가 되었는데 두산건설 → 서희건설 → 대우,포스코,두산 컨소시엄 → 다시 서희건설로 공식적으로 시공사만 4번이 바뀌었다. 조합 운영이 개판 5분 전이어서 현재 조합장도 공석이다. 조합에서는 신탁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는 의문인 상황이다.
평내 진주아파트가 착공에 들어가지 못한 다른 이유는 시공사인 서희건설 문제이다. 서희건설은 조합의 재정 상태나 상황이 좋지 않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조합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 시공을 미뤘다. 서희건설 입장에서는 착공에 들어가지 않아도 아쉬울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매에 넘어가게 되더라도 채무 권리관계가 복잡한 사업장에 다른 시공사가 입찰하기는 어렵다. 결국 서희건설이 낙찰 받을 가능성이 높은데, 경매에서 유찰 될 때마다 더 싸게 사업장을 인수할 수 있게 되어 도리어 서희건설이 유리해진다. 언론에서 서희건설의 입장을 들어보려고 해도 의도적으로 피하는게 이와 같은 의심을 더 짙게 만든다.
트리마제 사례에서도 봤지만, 재건축 정비사업은 시간이 곧 돈이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이주비 대출 등으로 나가는 금융 비용과 조합 운영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때문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비용은 모두 담보로 잡힌 땅에서 지불되고, 이자의 복리 효과로 이자 부담은 계속 커진다. 그러다 담보가 제 가치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결국 대출 연장이 불가능한 순간이 오게 된다. 2024년 1월 29일이 바로 그 날이다. 만약 이 날까지 연체 된 이자를 지불하지 못하면 평내 진주아파트는 경매에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조합원 입장에서 경매가 최악인 이유는 경매 낙찰가가 갚아야 할 채권 금액보다 적은 경우, 부동산 자산을 뺏기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돈을 더 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적어도 트리마제 엔딩은 가졌던 부동산만 사라지는 수익률 -100%에서 손해가 끝났다면, 평내 진주아파트 엔딩은 가지고 있던 부동산 이상의 손실이 나올 수도 있다는 점에서 더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해결책
평내 진주아파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우선 똥꼬쇼를 하든 뭘 하든지 간에 어떻게든 우선 대출을 연장 시켜 경매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이후에는 빨리 조합을 재구성하여 시공사인 서희건설과 공사비 협의를 끝내고 착공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예정됐던 분담금의 두 배를 내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공사가 진행되어 새 아파트가 생겨야 내 자산을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근 신축 아파트의 전용 59의 시세가 4억 5,000만원, 전용 84의 시세가 5억 5,000만원 정도 하고 있는데 완공만 되면 이와 비슷한 자산은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교훈
트리마제 엔딩과 평내 진주아파트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세 가지 정도이다.
우선 재건축과 재개발 같은 정비사업에서는 수주 전까지는 조합원들이 갑이고 건설사가 을이지만, 수주 계약 이후에는 갑을 관계가 180도 바뀌어 건설사가 절대 갑이 되고 조합원이 절대 을이 된다는 점이다. 트리마제 사례나 평내 진주아파트 사례 모두 건설사의 공사비 증액 요구에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위 사단이 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조합원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아깝기도 하겠지만, 시간이 곧 돈인 정비사업에서 빠른 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시공사인 건설사의 공사비 증액이나 기타 요청을 들어주는 게 결과적으로는 더 나은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길이다.
또 하나의 교훈은 빠른 사업 진행을 위해 조합에 대한 어느 정도의 불만족은 덮고 넘어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사업을 하게 되면 조합장의 뜻과 일부 조합원의 뜻이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조합장이 명백한 비리를 저지르거나 배임 등의 행위를 하지 않는 한, 조합원들은 어느 정도 눈을 감고 사업 추진을 위해 협조하는 게 자신들의 재산권을 지키는데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상대의 이익이 100이고 내 이익이 50인 것과, 모두 이익이 0인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비록 분하고 배 아프지만 전자를 선택하는 게 합리적인 판단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교훈은 조합원들이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두 눈을 크게 뜨고, 계속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서 올바르게 판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행동이 필요할 때는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점이다. 둔촌 주공을 정부가 살려주기는 했지만, 둔촌 주공 조합 내에서 어떻게든 사업을 진행시켜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조합원들이 많았다. 반대로 평내 진주아파트 조합의 경우 지난 10년간 조합과 비대위가 그렇게 싸우는 와중에 일반 조합원들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보면 거의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내 재산은 조합장도 아니고, 비대위도 아닌 내가 지켜야 한다.
요즘 들어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의 리스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공사비도 오르고 인건비도 오르고, 건설과 관련된 규제는 강화되고 정보 유통이 빨라지면서 조합 내에서 서로 다른 이견이 나올 수 있는 여지도 많아졌다. 투자 하기 전 어떤 조합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지 검증해보는 과정이 꼭 필요할 것 같다(문제는 이게 참 어렵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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