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문가들의 의견을 그리 많이 참고하는 편은 아닌데, 관심있게 보는 전문가 중 한 명이 김경민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이다. 미국에서 부동산학을 공부하고 관련 실무 경험을 쌓은 사람이라 그런지 부동산 시장을 최대한 합리적이고 이론적으로 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김경민 교수가 최근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자신이 보는 부동산 시장의 전망과 인사이트를 밝혔다. 이번 글에서는 교양이를 부탁해라는 프로에서 김경민 교수가 언급한 부동산 전망과 인사이트를 정리해본다.
전세 가격이 오르는 이유(by 김경민 교수)
2024년 5월 현재 서울의 아파트 전세 가격은 52주 연속 상승하고 있다. 52주면 1년 가까이 계속 오른 것이다. 역전세난에 대한 우려가 심했던게 불과 1~2년 전이라는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전세 가격 상승은 매섭게 일어나고 있다. 김경민 교수는 최근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이 오르는 이유로 네 가지를 제시했다.
1.인플레이션 헷지
전세는 인플레이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계속 올라왔다. 전세는 기본적인 속성이 물가상승에 따른 우상향이기 때문에 전세 가격이 내리는게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2. 인플레이션
인플레이션이 오면 다른 나라도 그렇고 월세 폭등 현상이 나타난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월세가 크게 올랐다. 월세가 오르면 오른 월세만큼 전세보증금도 더 올라가게 된다. 월세가 전세 가격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올라간 전세 가격은 매매 가격까지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3. 정책 실패
정부가 PF 위기를 막기 위해 너무 많이 지원을 해준게 전세 가격이 오르는 원인이다. 정부가 PF 거품을 꺼뜨렸다면, 토지 가격이 떨어져서 토지 가격이 내려간만큼 저렴한 가격에 주택을 공급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토지 가격이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공급되는 주택에 높은 분양가가 책정될 수밖에 없었다.
4. 빌라포비아
전세 사기에 대한 우려 때문에 빌라 수요자가 아파트로 몰리기 시작했다. 현재 빌라 전세 시장은 거의 붕괴상태이다. 허그의 전세보증보험 기준 강화(공시지가의 126%이내)도 빌라 전세 시장이 무너지게 한 요인 중 하나다. 서울 빌라 거래 비중은 월세가 전세보다 많아졌다. 그만큼 월세 가격은 많이 올랐고, 높아진 월세 부담은 아파트 전세로의 이동을 촉진시킨다. 비싼 월세 낼걸 전세대출을 받아서 이자로 내고 아파트에 들어가 사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이유
서울 아파트 가격이 오르는 이유는 서울이라는 도시만이 가지는 특별한 지위와 양질의 일자리 덕분이다.
1.서울의 특징
서울 부동산은 오픈 마켓이라 대기 수요가 많다. 서울 사람들만 서울 부동산을 원하는게 아니라는 의미다. 경기도 사람들도, 심지어 지방에 사는 사람들도 거주는 지방에 하지만 부동산 매수는 서울에서 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원정 매입 전체 비율은 줄고 있지만, 서울 원정 매입 비율은 증가하는 추세라는게 서울 부동산이 가지는 오픈 마켓 성질을 잘 보여준다.
서울 부동산의 가격이 떨어지면 서울 입성을 노리고 있는 경기도나 인천의 대기 수요가 서울로 몰린다. 서울은 한 마디로 부동산 수요가 끊이지 않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방광역시는 사정이 다르지만 서울만 놓고 보면 최근 몇 년 동안 아파트 공급이 적었다. 서울의 인구 규모를 고려하면 매년 3만 4,000여 가구 정도가 매년 공급되어야 하는데, 최근 공급량은 절반 수준인 1만 가구 중반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경제학적으로 봐도 부족한 공급은 시장 가격을 밀어 올릴 수밖에 없다.
2.직주근접
고등학교 경제지리 시간에서도 배우지만, 입지의 기본은 직주근접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직주근접의 중요성은 변하지 않는다. 직주근접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의 마포다. 2010년대 중반부터 마포에 정비사업으로 신축 아파트가 공급되면서 현재는 서울의 대표적인 중산층의 거주지가 되었다. 마포는 도심, 여의도, 홍대 사이에 있는 직주근접적으로 매우 훌륭한 입지를 갖춘 곳이다.
다른 도시들과 다르게 서울은 양질의 일자리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존 오피스 지구인 도심, 강남, 여의도는 물론이고 지속적으로 성수, 마곡, 구로가산 등 여러 오피스 거점이 생겨나면서 꾸준하게 일자리가 공급되고 있다. 이런 양질의 일자리는 서울 거주자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고, 높아진 소득은 부동산 가격을 지지하는 하방이 된다.
저출산과 부동산 가격
울산, 거제 등의 사례를 보면 해당 지역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졌을 때 해당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내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서울은 대한민국 최대의 경제 도시이기 때문에 예외가 적용된다. 전 국가적인 위기가 아닌 한 서울의 부동산 가격이 내리기는 쉽지 않다는 의미다. 만약 전 국가적인 위기가 온다면 지방 부동산의 하락은 서울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할 것이다.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오히려 사람들이 서울로 몰린다. 서울의 출산율은 전국 최하위인 0.5명 수준이다. 그러나 서울에서 일할 사람을 구하는 건 다른 지방 도시들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 일할 사람들이 지금도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저출산은 지방 쇠퇴와 몰락을 더 가속화할 뿐, 서울 부동산에는 큰 타격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국토교통부는 금융기관이 되어야 한다
자꾸 반복되는 전세 가격 상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1.전세의 월세화
먼저 전세를 월세화 시켜야 한다. 전세 대출 한도를 점점 줄이거나 하는 방법으로 전세 비중을 줄이고 월세를 늘려가야 한다. 전세 보증금이 시세를 받쳐주지 않으면 갭투자에도 한계가 생기고 이는 매매가를 안정시키는 요인이 된다.
2. 금융 지원 강화
그러나 문제는 월세가 늘어나면 주거 안정성이 악화된다는데 있다. 국토교통부가 해야 할 일은 주택 바우처나 임대료 바우처 강화를 통해 저소득층에게 월세를 지원해서 주거 안정성을 유지시키는 것이다.
더 이상 국토교통부는 아파트나 신도시를 짓는 건설 기관이 아니고, 금융을 지원할 수 있는 금융 기관이 되어야 한다. 출산율 0.6명의 나라에서 무슨 개발이 더 필요하겠는가? 미국의 국토교통부 역할을 하는 기관도 건설보다 금융의 역할이 훨씬 강하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금융화된 부동산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국토부의 역할 변경이 필요하다.
바잉(Buying)이 아니라 리빙(Living) –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부동산 시장을 이야기 할 때 바잉이 아닌 리빙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김경민 교수는 이들의 위선을 꼬집는다.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들은 이미 핵심지의 부동산을 샀다는 것이다. 이 말은 전형적인 가스라이팅, 사다리 걷어차기에 불과하다. 사람이 살면서 사게 되는 가장 비싼 재화가 부동산인데 어떻게 투자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살 수 있겠는가. 부동산은 철저하게 투자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재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