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분양하면 입주자모집공고문을 낸다. 입주자모집공고문에는 주택 위치, 평형, 세대수, 모집 방법, 당첨자 선정 방법 등 분양과 관련된 모든 정보가 들어가 있어서 청약을 하려면 반드시 집중해서 읽고 또 읽어봐야 할 중요한 문서이다. 그러나 문제는 글씨도 너무 작고 양도 너무 많다는데 있다. 그래서 대부분 잘 읽지 않는다. 설령 자세히 읽더라도 내용이 너무 많아서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대표적인게 시행사와 시공사, 위탁시행사의 구분이다. 이번 글에서는 아파트 분양 사업 구조와 아파트 분양에 참여하는 시행사, 위탁시행사, 시공사의 차이를 구별해본다.
아파트 분양 사업 구조 – 시행사와 시공사 구별하기
아파트 분양 사업 구조를 정말 단순화하면 아래와 같다.
아파트는 땅에 짓는 재화이기 때문에 반드시 땅이 필요하다. 땅은 나라땅일수도 있고(토지공유 아파트), 나라에서 아파트 시공으로 유명한 건설사들에게 판 땅일수도 있고(자체 사업), 부동산 디벨로퍼가 땅을 샀을 수도 있고(도급 사업), 땅 소유주들이 조합을 설립했을 수도 있다(재개발, 재건축 사업).
이처럼 아파트를 지을 땅을 가지고 있는 사람(법인)을 시행사라고 한다. 쉽게 말하면 땅주인, 그 땅에 아파트를 짓고자 희망하는 사업의 주체이다.
시행사는 아파트를 지을 능력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아파트 시공이 가능한 건설사들, 즉 우리가 아는 현대건설, GS건설, 삼성물산, 포스코이앤씨 같은 회사들이 땅 주인이라면 자기들이 아파트 건설까지 하면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행사는 아파트 건설 능력이 없다. 그래서 내 땅에 아파트를 지어줄 건설사를 모집한다. 아파트를 지어주는 회사가 바로 시공사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아파트 이름에는 시행사가 아닌 시공사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힐스테이트 아파트는 현대건설이나 현대엔지니어링이 땅을 마련해서 아파트까지 지은 것으로 이해하고 자이가 붙어 있으면 GS건설이 땅을 사고 그 자리에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건설사가 자신들이 땅을 사서 자신들이 직접 시공한 경우를 자체 사업이라고 하는데, 자체 사업의 비중은 그리 높지 않다.
시행사가 시행사의 이름을 붙이지 않고 시공사의 이름을 아파트에 붙이는 이유는 이게 더 아파트가 잘 팔리기 때문이다. 유명하지 않은 시행사의 이름을 붙인 아파트보다는, 유명한 메이저 건설사 아파트 브랜드를 갖다 붙이는게 상품성이 더 높다. 힐스테이트에 들어가고 싶은가 이름 없는 건설사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은가? 이유는 생각 외로 간단하다. 단, 이 과정을 잘 모르는 우리가 잠깐 오해를 할 뿐이다.
대부분의 아파트 분양 사업은 남의 땅(시행사)에 계약서대로 아파트를 지어주고 돈을 받는 도급 사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표적인게 재개발, 재건축 같은 정비사업이다. 청약홈에 올라온 정비사업 입주자모집공고문을 보면 시행사에 OO재개발조합, OO재건축조합이라고 되어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비사업장에서 건축비 갈등이 자꾸 생기는 이유는 건설사 땅에 아파트를 짓는 건설사의 자체 사업이 아니고, 시행사에서 건축비를 받아가는 구조의 사업이기 때문이다.
위탁 시행사
그런데 입주자모집공고문을 보다보면, 시행사에 ㅇㅇ신탁이라고 적힌 경우를 굉장히 많이 보게 된다. 신탁이란 재산의 권리와 처분을 남에게 맡긴다는 뜻이고, 신탁회사는 이러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하는 회사이다.
시행사(시행수탁사)로 신탁회사가 적혀 있는 경우에 유심히 봐야할 건 위탁시행사(위탁시행자)이다. 이 위탁시행자가 신탁회사에 시행사의 지위를 신탁 형식으로 넘긴 것이기 때문이다. 신탁사가 껴있는 경우 사실상의 시행사는 위탁시행사(위탁시행자)라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시행사는 왜 자신이 사업을 진행하지 않고 신탁회사에 시행권을 넘기는 것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째는 사업의 안정적 유지와 관리, 둘째는 수분양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신탁사를 시행사로 할 경우 신탁회사의 명의로 사업을 진행하므로 시행사의 부도, 제3자의 권리침해 등의 리스크 헷지가 가능해진다. 신탁법에 의거해서 신탁재산에 대해서는 강제집행이나 제한물권 설정이 방지된다는 점도 안정적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수분양자 입장에서는 신탁회사 명의로 분양 계약을 진행하기 때문에 분양대금 유용이나 횡령 등의 각종 분양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분양대금 수납과 공사대금 지급 등 자금관리가 투명해지고 사업관계인 간 예기치 않은 분쟁으로 인한 입주 지연 등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대기업 건설사가 아닌, 토지를 매입해서 사업을 시행하는 부동산 디벨로퍼 회사들은 회사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위 분양공고에 등장하는 위탁시행사인 보광종합건설이라는 회사도 총 자본이 700억 밖에 안되는 작은 회사이다. 아무래도 재무적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안정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신탁회사에 시행을 맡기는 것이다. 물론 신탁회사라고 해서 무조건 신탁을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시행사가 PF 또는 시공사의 지급보증 등을 받아온 경우에 신탁 의뢰를 받아주는데 이를 ‘관리형토지신탁’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신탁사 없이 시행사가 자체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다가 중간에 중단된 경우가 많았다. 지방에서 국도를 타고 다니다보면 주변에 공사를 하다가 멈춘 상태로 방치된 아파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는데, 대부분 시행사가 부도가 나서 공사가 중단된 경우이다. 시행사가 분양 대금을 받아서 관리를 잘 해야하는데 분양 대금을 다른 곳에 쓰거나 횡령하거나 등의 이유로 시공사에 돈이 지급되지 않아 공사가 중단된 것이다(물론 공사를 맡은 시공사가 부도가 나버려 공사가 중단된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