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기업형 임대주택 시장 개막 – 국민연금까지 참전

최근 언론에서는 글로벌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이 한국 임대주택 시장에 대한 투자를 빠르게 늘리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국민연금’입니다. 그동안 오피스나 물류센터 같은 상업용 부동산에 집중했던 연기금이, 이제는 ‘살림집’인 임대주택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은 청년·신혼부부·중산층을 겨냥한 수익형 주거용 부동산 대체투자를 검토 중이며, 최소 7% 이상의 수익률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기금의 1%만 투입해도 약 18조 원 규모의 주택사업 재원이 마련되는 만큼, 시장에 미칠 파급력이 작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국내외 큰손들이 ‘임대주택’이라는 낯선 자산에 눈독을 들이는 걸까요? 그리고 기업형 임대주택 흐름은 서울 전월세 시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왜 지금 기업형 임대주택인가 — 구조 전환의 신호

한국 주택 임대시장은 오랫동안 ‘전세’라는 독특한 제도 위에서 움직여 왔습니다. 목돈을 한 번에 맡기는 전세 구조에서는 임대인이 정기적인 임대수익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기관투자자가 들어올 유인이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상황이 바뀌고 있습니다.


  • 고금리 장기화와 전세사기 여파로 월세 선호 현상이 뚜렷해졌습니다.
  • 1~2인 가구 급증과 외국인 유학생·근로자 유입으로 임대 수요 기반이 탄탄해졌습니다.
  • 반면 민간이 공급하는 양질의 장기 임대주택은 전국적으로 10만 가구에도 못 미칠 정도로 부족합니다.
  • 선진국은 전체 주거 시장에서 민간 임대가 30~40%를 차지하지만, 한국은 아직 기업 민간 임대 비율이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즉, 수요는 늘어나는데 공급은 절대적으로 부족한 ‘기울어진 시장’이라는 것이 해외 자본이 주목하는 지점입니다. 오피스 시장이 과거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되며 CBRE·JLL 같은 글로벌 부동산 자문사들의 각축장이 됐던 것처럼, 주거용 부동산도 같은 경로를 밟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옵니다.


해외 기관들의 진출 의지 — “한국은 다음 타깃”

최근 한국의 임대주택 시장에 진출을 선언한 투자사들의 면면을 살펴봅니다.


그레이스타(Greystar) — 세계 1위 주거용 부동산 운용사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본사를 둔 그레이스타는 약 109조 원(786억 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주거용 부동산 전문 운용사입니다. 학생 기숙사, 시니어 레지던스, 임대주택 운용 노하우를 앞세워 2025년 한국 사무소를 열었고(서울 마곡동 원그로브), 삼성SRA자산운용 출신 강정환 대표를 한국 대표로 선임했습니다. 회사 측은 아시아퍼시픽 2호 펀드에 한국 시장 편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창업주는 한국 특유의 전세 문화가 점차 월세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중국 시장이 사실상 닫히면서 한국이 ‘탈중국’ 수혜국으로 부상했다는 점도 언급했습니다.


109조원 굴리는 美 1위 주거용 부동산 운용사 내년 상륙 | 한국경제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CPPIB)

세계 10대 연기금으로 꼽히는 CPPIB는 2025년 1월 임대주택 개발을 목적으로 약 5,000억 원 규모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했습니다.

캐나다연금투자위원회 임대주택 투자


하인즈·모건스탠리·KKR

미국계 디벨로퍼 하인즈, 투자은행 모건스탠리,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등 글로벌 ‘빅네임’들도 국내 임대주택에 직·간접적으로 투자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모건스탠리는 서울 강동구, 금천구, 성북구 등에서 오피스텔을 매수했으며 투자한 금액이 600~700억 정도로 알려졌습니다.

콤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은 서울 동대문구와 영등포구에 건물을 매입해서 리모델링 후 임대를 주고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내가 임차한 집의 집주인이 미국의 대표 투자은행 ‘모건 스탠리’라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기업형 임대주택 현황


실제 매수로 이어진 사례 — 티시먼스파이어·APG ‘코리아 리빙 벤처’

의지 표명을 넘어 실제 자금 집행까지 이어진 대표 사례도 있습니다.

글로벌 자산운용사 티시먼 스파이어와 세계 3대 연기금 중 하나인 네덜란드 연금자산운용(APG), 그리고 네덜란드 부동산 운용사 바우인베스트가 함께 만든 ‘코리아 리빙 벤처(KLV)’입니다. 이들은 3억 달러(원화 약 4,400억~4,600억 원) 규모로 1차 클로징을 완료했다고 밝혔습니다.

투자 대상은 서울과 경기도, 이천 등 수도권 교통 요지 인근으로, 산업단지와 대학 캠퍼스 접근성이 좋은 다가구·임대주택입니다. 티시먼 스파이어는 지분 투자만 4억 달러(약 6,100억 원)까지 확대하고, 차입금까지 더하면 최종 투자 규모를 8억 달러(약 1조 2,300억 원) 이상으로 키운다는 목표를 내놨습니다. 회사 측은 한국 주거 부문이 수요 증가와 공급 제약으로 시장 규모는 크지만 제도적 기반이 미흡한 만큼, 지금이 선점의 기회라고 설명했습니다.


걸림돌도 있다 — 규제라는 변수

다만 이 흐름이 거침없이 순항하는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9월 정부가 수도권·규제지역 내 주택을 매매·임대 목적으로 취득하는 사업자에 대해 담보인정비율(LTV)을 사실상 0%로 제한하면서, 일부 외국계 운용사의 투자가 전면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수도권에서 주택 사업을 벌이면 보유 주택을 모두 합산해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는 점도 추가 투자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지목됩니다. 국민연금이 임대주택 시장에 힘을 보태려는 배경에는, 이런 민간·외국계 자본의 공백을 메우려는 정책적 의도도 읽힌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서울 전월세 시장 전망

이런 자본 유입 흐름과 별개로, 국내 전문가들의 서울·수도권 전월세 시장 전망은 대체로 ‘상승 우위’에 무게가 실립니다.


  • 한 부동산 정보업체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올 하반기에도 매매·전세·월세가 동반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응답이 우세했습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하반기 매매가 상승을, 다수가 전월세 불안 심화를 점쳤습니다.
  • 한 건설·부동산 연구기관 세미나에서는 올해 수도권 전셋값이 연간 5% 안팎 상승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이는 최근 3년 중 최고 수준의 상승폭입니다.
  • 배경으로는 2020~2024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고금리, 공사비 급등에 따른 착공 물량 감소가 시차를 두고 입주 물량 부족으로 이어지는 ‘공급 절벽’이 꼽힙니다. 시중은행 부동산연구원은 수도권이 본격적인 입주 가뭄에 진입하는 만큼, 갭투자로 공급되던 전월세 매물마저 줄어 가격 변동성과 임차인의 주거비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 다주택자 규제 강화가 매물 잠김으로 이어지며 전셋값 상승 압력을 키웠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비아파트 공급 확대가 전월세 시장의 숨통을 틔울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물론 지역·유형별 온도차는 존재합니다. 예컨대 서울 일부 연립·다세대 원룸의 경우 최근 전월세가 동반 하락하며 국지적 조정 흐름도 감지됩니다. 하지만 서울 핵심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공급 부족 기조는 당분간 쉽게 해소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런 환경은 역설적으로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는 매력적인 투자 논리가 됩니다. 임대료 상승 압력이 이어지는 시장일수록 안정적인 임대수익을 노리는 연기금·기관 자금이 들어올 유인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국민연금까지 가세할 경우, 서울 임대주택 시장은 개인 임대인 중심에서 기관투자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기관화(institutionalization)’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마무리 — 실수요자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해외 연기금과 국내 국민연금이 동시에 임대주택 시장을 주목하는 것은, 그만큼 이 시장의 구조적 수익성과 성장 잠재력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양질의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공급이 늘어나 전월세 시장의 안정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습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대출 규제와 세제 이슈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고, 공급 부족에 따른 전월세 가격 상승 압력도 동시에 진행 중입니다.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당분간 전월세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임대차 계약이나 이사 시점을 조금 더 여유 있게 계획하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